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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7:12   
작성자 : 이남원
제목 : 백규병 노병 638고지 참전지역방문

백규병 병장은 1971년12월 퀴논항으로 입항하여 맹호기갑연대 10중대로 참전했다 처음 몆개월동안은 19번도로 안케고지올라가는 16번다리에 1개소대가 파견되어 16번다리을 지키는임무을  맡았다 1972년 4월9일 안케고지지역과 안케올라가는길  산어디엔가 월맹군 정규군이 장악하여 미군보급헬기을 떨어드리는 사건이 발생하여 맹호기갑연대 10중대는 중대원150명전원이 안케올라가는 길8부능선 오른쪽 방향 산정상에 헬기로 투입되어 10중대본부가 주둔하였다 같은 시기에 6중대 9중대가  건너편 산정상에 주둔했다 4월11일 중대에서 백규병병장과4명이 특공대을 조직하여 19번도로 8부능선 계곡으로 월맹군 주둔지을 탐색하려고 특공대원4명이 16번도로

안케고지올라가는도로 계곡까지 장글을 해치고 내려왔다 우리 아군헬리콥타는 6중대 9중대 10중대 물과 식량을 보급하기위해 하늘을 날르는 순간 어디에선가 날아온 월맹군정규군 포탄에 맞아 장글속으로 사라진다 안케올라가는 고개길은 아군 장갑차와 추럭이 월맹군 포탄에 맞아 장글계곡에 처박혀있다 어디엔선가 계속날라온 포탄 적군포탄인지 아군포탄인지 정협병 10중대 중대장님도 무전으로 우리병아리들 다죽는다  무전으로 들려온다  특공대 4명은 안케올라가는 도로 물내려가는 둥근세멘통 안에서 몸을 숨기고있었다

특공대원으로 참전한 전우들 3명은 모두전사하고 오른족 백규병 병장은 새로나온 방탄복 20키로을 몸에 지니고있다



19번도로 16번 다리는48년전 그대로 남아있다 다리에서 게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48년전 그대로다 48년전에는 게곡물에 많은 고기들이 살아서 수루탄 한개 카서 물속에다 던지면 수많은 물고기을 잡을수있었다


19번도로 16다리 계곡옆에 베트남민가는 지금도 그대로나아있다 그러니 주인이 바꿔서 지금살고있는분들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산다고한다


현제 19번도로 16번다리근처


1972년 19번도로 다리에서 근처 베트남어리이와 같이찍은사진 이어린이도 지금씀 50대 후반은 되엇을 것이다

주의동래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몰르겟다고 한다






안케고개 올라가는길 8부능선씀 되는것같다 이곳에서 우리특공대원 4명은 수없이 떨어지는포탄과 총탄때문에 아래 물내려가는 콘크리트 하수구에 몸을피했다


 백규병병장 부인은 살아가면서 이곳에서 같은전우들은 전사하고 혼자살아서 살아돌아왓다 부부만 안케전투지역을 찿아왔다

1975년 4월15일부터는 안케고개 638고지 지역으로 전투가 새로시작되어 수많은 전우들이 싸워보지도못하고 전사하곤했다 어느중대장은 드럼통에 홁을 넣어서 드럼통을 3명이 굴리면서 올라가라는 명령을내린 중대장도있었다 드럼통에 흙은 가뜩넣으면 3명이굴러도 꿈쩍도 하지않은다고 한다



638고지올라가는 길은 너무험악해서 15년전부터 알고지내던 아주머니을 앞세우고 고지로올라가는중이다 15년전에는 나무도없고 민둥산이였는데 지금은 소나무와옷갓 잡나무가 뒤엉켜서 10미터앞도 볼수가없다



638고지 올라가는길 500고지정도되는곳에 전쟁당시 월맹군이 파놓은 거대한 땅굴이 지금도 그대로있다 수직으로 20미터씀되는곳이라 내려갈수도없다 언제가는 베트남인들을 앞세우고 꼭한번 내려가서 50년전 땅굴을 보고싶다




72세의 노병이 10중대원 150명 중에서 115몀정도가 전사하고 살아남은 중대원35명 이곳에 올라와보니 전우들모습이아른거리고 눈물만난다 육군본부기록에는 75명정도 전사로 나와있다고 하니까

말도안되는 기록이란다 10중대원만 100여명이넘고 헬리콥타도 2대가 장글속으로 처박고 수많은 전사자만 내고 하니까 4월25일경  상부에 명령이라며 전투는 중지하고 각자 개인호을 파고 호속에 나오지 말라고 명령이 내려와서 살기위해 열심히 개인호을 파고 호속에 대기중인데 26일경에 미군 전술비행단이 B29을 앞세우고 638고지근처와 뒤쪽월맹정규군 주둔지을 몇시간동안 폭격햇다 638고지 근처산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벌래한마리 살수없는 지역으로 변햇다 그다음 한국 군인들이 638고지을 아무런 저항없이 올라서 고지을점령하고 햇었다 백규병 병장도ㅛ 가슴에 베트공소총한발과 폭탄파편으로 부상하여 106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너무많은 전사자와 부상병때문에 치료할 자리가없다고 해서 맹호사단사령부  의무대로 가서 치료을 받았다 다행히 신형 방탄복20키로을 입고있어서 가슴정면에 총을 맞았으나 신형방탄복때문에 살아나서 살고있다


638고지 뒤면을 나무와 장글때문에 볼수없엇으나 베트남 프레이코 성지역에서 재초작업을 해놓아서

638고지가 선명한글씨로 잘보인다 오랜세월장글에 뒤면이 햇빛을 못보아서 바위가 많이 변색되었다




노병은 이곳 638고지을 점령하기위해 얼마나많은 전우들이 이곳장글속에 묻혀있을까?

10중대원만 100명이넘는 전사자? 전우들을 생각하며 638고지 이곳저곳 다니고있다 비록미군공군의 도움으로 고지을 점령하고 19도로을 개통했으나 당시전우들을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10중대장

정협병 대위는 오래전부터 어렵게 찿아서 전화을 하곤 햇으나 전화을 받지않은다 왜그럴까?

나한테만 그러는게  아리라 다른 전우 들이 전화해도 받지않은다고한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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